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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잔투가르XE7 2019-02-09 20:10:19  
2019-02-09 20:10:19  


  • 메구로가조엔은 1930년대 호소카와 가문이 만든 대형 연회장이다. 2.6㏊에 이르는 부지에 벽, 천장, 바닥을 옻 작품 5000점이 뒤덮은 공간이다.

    일본 정부가 역사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일본 칠예의 보고(寶庫)다.

    “현관에 들어선 순간 숨이 막혔다. 눈길 가는 곳마다 빛나는 자개 하며 눈빛을 흡수할 듯한 검은 옻색…. 그냥 요리점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메구로가조엔은 지진과 홍수로 붕괴일보 직전이었다. 호소카와가에서는 부술지 복원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작품을 만지고 있는데 연회장 입구 위 천마도(天馬圖)를 보고 피가 끓어올랐다.”

    굵직굵직한 자개로 말과 천사가 그려져 있었다. 그 오른쪽 구석에 원화를 그린 일본 화가 이름과 옻그림을 완성한 작업자 이름이 있었다. ‘光信’.

    거침없고 씨알 굵은 나전 솜씨는 틀림없는 조선시대 나전기법이었고 거기에 식민시대 조선의 장인 이름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칠예작품들은 열 중 여덟이 조선과 고려 기법이었다.

    넋을 잃고 있는 전용복에게 메구로가조엔의 고위층이 물었다. “복원하게 되면 입찰할 생각 있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왔지만 그는 이미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내가 한다. 이건 돈 문제가 아니다.”

    ”전 선생, 우리 간부회의에서 복원 및 창작작업에 따른 모든 작업을 전부를 선생에게 맡기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습니다.” 지난달 18일, 도쿄 메구로가조엔 찻집에서 전용복은 이 말을 하다 한참을 울었다.

    그날 전용복은 밖으로 튀어나가 지나가는 개한테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로수에게 절을 했다. “신이라는 게 있구나, 열심히 하는 사람은 절대로 배반하지 않는구나….”

    당시 입찰을 했던 일본 장인이 3000명이 넘었다고 했다. “100분의 1만이라도 고마워했을 일을, 전부를 맡았다. 지금 생각해도 이건 꿈이다. 의지만으로도 되겠지만 결국 노력이었다. 노력 않는 자에겐 운이 따라주지 않으니까.”

    “공사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정말 목숨 걸고 일했다. 제자들을 보니 광기에 휩싸인 예술가들이었다. 고개를 완전히 젖히고 옻을 칠하고 금박을 붙이다 보니 얼굴에 옻방울이 수시로 떨어졌다. 우리 모두의 얼굴은 퉁퉁 부어 올랐고 벗겨진 살에서는 진물이 흘렀다.”

    3년 뒤인 1991년 11월 13일 메구로가조엔이 다시 문을 열었다. 문을 열던 날, 새까맣게 옻물이 든 손톱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는 전용복의 눈 앞에 일장기와 함께 태극기가 펄럭였다. 나이 서른 아홉, 전용복은 그날 기절하고 말았다.

    이와테현에서는 그에게 미술관 운영을 의뢰했다. 이와테 출신의 서양화가가 만들었다가 그의 사후 주차장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던 미술관이다. 3년 준비 끝에 2004년 5월 26일 이와테현 모리오카(盛岡)시에 이와야마칠예미술관(岩山漆藝美術館)이 개관했다. 이와테(岩手)의 岩과 부산(釜山)의 山에서 이름을 땄다.

    귀화를 권유 받았지만 하지 않았다. 귀화했으면 문화기금 받아서 편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선의 옻칠쟁이가 아닌가.

    손혜원 의원이 자기 재산 100억을 안쓰고 배길수 없었을겁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이렇게 대단한데...

    딴지일보에 가시면 더 많은 사진과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www.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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